回 恨 의 미아리 고개 -- 연탄이 사라지기까지
부산시 동래구청 세무2과에서 통계의 업무를 보고 있을 때이다.
여직원들은 통계업무를 더러 맡기지만 내가 통계업무를 자주 보아온 것은 고등학교가 상업학교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봄날, 연탄까스를 마신 날을 기억한다. 집이 이층집이라 윗층에서 혼자 잤는데 일어나서 바지의 똥을 손으로 만진 기억이 난다.
나의 두뇌가 연탄까스를 마시고 희미하면서도
방에서 똥을 싸면 안된다는 의식은 있었는가 보다. 이후의 필름은 끊겼지만.......
그리고는 살아났다. 말끔히. 집에서 나를 데리고 가까운 병원(김00 욋과)에 갔기 때문이다. 연탄까스를 마시고 똥을 사면 산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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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경남 진해시 공무원에서
부산시 공무원으로 전입해 온 김00 여사님(오래도록 공직생활을 했음)께서
들려 준 이야기 한 토막.
여사님의 여동생이 서울대학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했는데 집(진해)에 왔단다.
선을 보기 위해서....... 그런데 그 날 밤에 죽고 만 것이다. 연탄까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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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한국방송통신대학에서
나와 함께 해외 연수(1983년 10월)를 간 일원 중의 한사람(소00)이
근무지(교육부 산하)를 서울로 옮겼는데
이후 셋방(서울)에서 연탄까스를 마시고 죽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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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지금 부산시에 근무하는 이00국장(여 -- 서울대 법대)이
사무관 시험을 치러 가는 날 일어나 보니 자녀(?) 둘이 연탄까스로 죽어 있더라”는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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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까스 사고 리스트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산시에 공직자로 근무한 나의 고등학교(여상고) 한해 후배(이00- 여)도
통계업무를 자주 보았다. 근무지를 부산시 차량등록사업소로 옮겨서 근무하다가
결혼을 했고 이후 신혼에 연탄까스를 마셨다.
남편은 죽고 후배 공무원은 살았다. 이후 그녀는 공직을 퇴직하였다.
1988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선진한국의 주거시설도 보일러 시설로 바뀌었다.
연탄아궁이는 옛날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연탄까스를 마시고 죽은이들은
가족과 이웃들에게서 옛이야기로 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또 연탄까스를 마시고 산자는 연탄까스를 마시고 죽은 자를
잊혀진 옛이야기로 묻어두기에는 미안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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