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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 더위
작성자 이○○ 작성일 2004-07-22
조회 758
오늘이 대서입니다. 일년중 가장 더운 시기죠
일기예보에 의하면
불볕더위는 약 20일정도 계속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농작물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삼복(三伏)

삼복(三伏)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속절(俗節)이다. 하지 후 셋째 경일(庚日)을 초복, 넷째 경일(庚日)을 중복, 입추 후 첫 경일(庚日)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三庚日)\'' 혹은 \''삼복(三伏)\''이라 한다.

복날은 10일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린다. 그러나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한다. 복의 어원에 대해서는 신빙할 만한 설이 없다. 다만 최남선의《조선상식(朝鮮常識)》에 의하면 \''서기제복(暑氣制伏)\''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복(伏)은 원래 중국의 속절로 진(秦), 한(漢) 이래 매우 숭상된 듯하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상고하면《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진덕공(秦德公) 2년에 처음으로 삼복제사를 지냈는데, 성 4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방지했다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전한다.
삼복은 1년중 가장 더운 기간으로 이를 \''삼복더위\''라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주어 관의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 가게 하였다. 복중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아이들과 부녀자들은 여름 과일을 즐기고, 어른들은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산간계곡으로 들어가 탁족(濯足)을 하면서 하루를 즐긴다. 한편으로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한다.

복날과 관계 있는 속신으로 \''복날에 시내나 강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는 것이 있다. 이러한 속신 때문에 복날에는 아무리 더워도 목욕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복에 목욕을 하였다면 중복과 말복 날에도 목욕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복날마다 목욕을 해야만 몸이 여위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서(大暑)

대서(大暑)는 소서(小暑)와 입추(立秋) 사이에 들며, 음력 6월 중기(中氣)로 양력 7월 23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120°가 되는 때이다. 이 시기는 대개 중복 때이며 더위가 심한 시기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대서 입기일(入氣日)로부터 입추까지의 기간을 5일씩 끊어서 삼후(三候)로 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썩은 풀이 변하여 반딧불이 되고, 중후(中候)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말후(末候)에는 큰비가 때때로 내린다고 하였다.

이 무렵에는 몹시 더우며, 소서 때로부터 장마전선이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큰 장마를 이루는 때가 자주 있다. 또한, 참외나 수박 등이 풍성하고, 햇밀과 보리를 먹게 되고, 채소가 풍족하며 녹음이 우거지는 시기로 과일은 이때가 가장 맛이 난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과실의 단물이 없어지는 반면, 가물었을 때 과실 맛이 난다고 한다. 특히 수박은 가뭄 뒤에 가장 제 맛을 낸다.
\''큰 더위\''인 대서는 겨울인 대한으로부터 꼭 6개월이 되는 날이다. 일년 중 가장 더운 시기로 특히, 대서 이후 20여 일이 일년중 가장 무더운 시기이다. \''불볕더위\'', \''찜통더위\''도 이때에 해당된다. 밤에도 열대야 현상이 일어나며, 더위 때문에 \"염소 뿔이 녹는다\"고 할 정도다. 특히, 무더위를 초ㆍ중ㆍ말 삼복으로 나누어 소서, 대서라는 큰 명칭으로 한 것도, 무더위의 경종을 농민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대서 때는 뜨거운 태양과 많은 비로 인해 벼를 비롯한 모든 작물이 잘 자라 \"오뉴월 장마에는 돌도 큰다\"고 한다. 이때는 더운 날씨 때문에 많이 발생하는 병인 문고병과 이화명충, 흑명나방 등을 예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논두렁의 웃자란 풀들이 벼를 덮어 생육을 방해해 논두렁 풀도 베어준다. 논두렁에 심어둔 두렁걸이 콩, 팥, 고구마 밭의 풀도 이때 메고 복돋아 주어야 한다.
농가에서는 대서가 낀 \"삼복(三伏)에 비가 오면 대추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여름철 잦은 비와 고온 다습한 날씨는 벼에 바람 한 줌 통할 수 없게 한다. 이렇게 되면 벼 줄기가 썩어 들어가게 되는데 이 병을 문고병이라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많은 벼들이 서로의 어깨를 맞댄 채 함께 있으면서도 썩지 않고 잘 자란다. 그것은 벼들 스스로 최소한의 자기 존재를 지켜나갈 수 있는 거리와 여유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 듯, 벼들도 자기 세계를 지키며 그렇게 사는 것이다.
음력 6월은 노지용 수박과 참외 등 각종 과일들이 생산되는 시기이다. 벼를 비롯해 그동안 경작한 농사는 가을의 수확을 기다리는 시기로서 농군들의 일손도 다른 달보다 한가한 때이다. 그간 심어둔 호박, 고추, 콩 등을 솎아내고, 김을 매고 흙을 북돋워 준다. 잎담배도 따로 건조시킨다. 퇴비 만들기, 삼베하기, 논 물빼기와 물대기도 소서ㆍ대서 절기의 중요한 일이다.
7∼8월은 본격적인 장마시기로 쌀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특히, 집중적으로 오는 태풍과 비도 문제이지만 장기간 계속되는 장마는 냉해와 병충해 등을 유발해 벼의 생육에 심각한 피해를 끼친다. 벼와 옥수수, 밤, 감 등 작물의 알곡이 열리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옛날에는 논의 김을 매어주었으나 지금은 제초제를 뿌리고 논 김은 매지 않는다. 그러나, 밭 김은 매어주고 논밭두렁의 잡초베기와 퇴비장만 등이 이 무렵에 계속된다.

가뭄이 심해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벼논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다. 벼들이 누렇게 타들어 가면 농민들의 마음도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장기간 한발이 계속되면 마을 단위로 기우제를 지낸다. 그것도 신통치 않으면 장을 옮겨 섰다. 비가 내리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농민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단지 안에 도마뱀을 잡아넣고, 병에다 버들가지를 꽂아두며 비가 오길 원했다. 쌀 농사에 가장 무서운 복병은 가뭄과 냉해이다.
과거엔 가뭄이 가장 큰 피해를 입혔으나 오늘날 저수지의 축조로 천수답이 많이 사라지고, 양수기 등 농기계의 발달로 가뭄은 그다지 심각한 해를 입히지 못한다. 그보다는 장기간 날씨가 차가워지고 비만 내리는 냉해는 현대과학으로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 그저 구멍 뚫린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의 삿대질을 해댈 뿐이다. 얼마나 복장 터지고 심장이 상했으면 \"냉해가 있는 해는 이삭이 달리지 않아 벼를 붙잡고 운다\"고 했을까? 여름철 때 이른 잦은 강우와 냉해는 잎 도열병, 이삭도열병 등 각종 병·충해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소서(小暑)

소서(小暑)는 하지(夏至)와 대서(大暑) 사이에 있는 음력 6월 절기(節氣)로, 양력으로는 7월 7일경이다. 태양이 황경 105°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24절기(節氣)의 11번째. 한국에서는 이 시기에 장마전선이 오래 자리잡아 습도가 높은 장마철을 이룬다.

팥, 콩, 조 들도 하지 무렵에 심고, 소서 무렵에 김을 매준다. 또, 이때 퇴비 장만과 논두렁의 잡초 깎기도 한다. 소서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므로, 온갖 과일과 소채가 풍성해지고 밀과 보리도 먹게 된다. 특히, 음력 5월 단오를 전후하여 시절식(時節食)으로 즐기는 밀가루 음식은 이맘때 가장 맛이 나며, 소채류로는 호박, 생선류는 민어가 제철이다.
민어는 조림, 구이, 찜이 다 되지만, 이 무렵에는 애호박을 넣어 끓인다. 특히, 민어 고추장국과 회의 맛이 두드러진다. 애호박에서 절로 단물이 나고 민어는 한창 기름이 오를 때여서, 그 국은 고추장 특유의 매운 맛이면서도 단물이 흥건히 괴어, 맵고 달콤한 맛이 첫여름의 입맛을 상큼하게 돋우어 준다.

소서는 \''작은 더위\''라는 뜻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때이다. 이맘때가 되면 벼논에서는 잎 도열병과 멸구를 방제하기 위해 1차 농약을 친다. 물약을 치기도 하고 요즘은 손으로 뿌리는 농약을 치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장마기와 가뭄기가 겹치는 이때 논물관리와 무너지기 쉬운 논둑 관리, 그리고 가뭄에 대비해 양수기를 설치해 놓는다.
<농가월령가>에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 뿐이로다
논밭을 갈마들여 삼사차 돌려 맬 제
날 새면 호미들고 긴긴해 쉴 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막혀 기진할 듯
했듯이 김매기도 빼 놓을 수 없는 일이다.

요즘은 다양한 제초제와 기계화로 인해 손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과다한 제초제와 농약 살포는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땅을 죽이고 자연을 죽이는 농법에서 벗어나 자연에 순응하며 벌레와 지렁이와 공생하는 생태농법, 유기농법이 활발해져야 한다. 농사에 있어 진짜 농군이라면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으니, 그것은 곧 \''무 농약\'', \''무 제초제\'', \''무 화학비료\''이다.
농약을 쓰지 않으려다 보니 메뚜기와 각종 병충해가 들끓어 이를 감당할 농법을 개발해야 하고,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 사흘이 멀다고 김매기와 피사리로 허리 펼 날이 없고,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려다 보니 퇴비와 유기질 비료를 만드느라 일손을 다 뺏겨야 한다. 3무의 원칙을 지키며 농사짓는다는 것이 엄청난 고통일 것이다.
허나, 진짜배기 농사꾼,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농군이라면 이런 수고를 수고라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남들이 바보 같은 짓 한다고 손가락질 할지라도 대대로 물려줄 땅임을 안다면, 묵묵히 3무의 원칙 아래 굵은 땀, 진실의 땀을 흘리며, 한 뙈기의 논이라도 정성스레 대할 것이다.

※ 황도(黃道, ecliptic)
천구(天球)에서 태양의 궤도. 태양의 궤도면은 평면이 아니지만 평면이라 보고 그 평균궤도면을 황도면(黃道面)이라고 한다. 이것은 적도면과 23°27\''쯤 기울어 있고, 황도상의 적도를 가로지르는 두 점이 춘분점과 추분점이다.
옛 중국사람들은 천문학 지식을 동원, 지구의 태양 공전 주기, 즉 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를 동쪽으로 15˚간격으로 24개로 나누고 기후를 나타내는 용어를 하나씩 붙였는데, 이것이 절기(節氣)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태양의 위치가 황도 0˚일때는 춘분(春分, 3월 21일경), 15˚는 청명(淸明, 4월5일경), 30˚는 곡우(穀雨, 양력 4월20일경)로 이상은 봄의 절기이고, 45˚는 입하(立夏, 5월6일경), 60˚는 소만(小滿, 5월21일경), 75˚는 망종(芒種, 6월6일경), 90˚는 하지(夏至, 6월21일경), 105˚는 소서(小暑, 7월7일경), 120˚는 대서(大暑, 7월23일경)로 여름이며,
황도 135˚는 입추(立秋, 8월8일경), 150˚는 처서(處暑, 8월23일경), 165˚는 백로(白露, 9월8일경), 180˚는 추분(秋分, 9월23일경), 195˚는 한로(寒露, 10월8일경), 210˚는 상강(霜降, 10월23일경)으로 가을이며, 225˚는 입동(立冬, 11월7일경), 240˚는 소설(小雪, 11월22일경), 255˚는 대설(大雪, 12월7일경), 270˚는 동지(冬至, 12월22일경), 285˚는 소한(小寒, 1월6일경), 300˚는 대한(大寒, 1월21일경)으로 겨울절기이며, 315˚는 입춘(立春, 2월4일경), 330˚는 우수(雨水, 2월19일경), 345˚는 경칩(驚蟄, 3월6일경)으로 이 또한 봄의 절기이다
황도를 기준으로 하는 좌표계를 황도좌표계라 하며, 행성의 위치를 나타내는 데 편리하다. 행성의 궤도면이 황도면과 이루는 각을 황도경사(黃道傾斜)라고 한다. 황도는 미세하지만 다른 행성으로부터의 영향으로 조금씩 변한다.
달의 궤도면인 백도면(白道面)과는 5°9\'' 기울어 있다.



단오(端五)

음력 5월의 대표적인 명일로는 5월 5일 \''단오날\''을 들 수 있다. 단오날은 고려시대의 9대 명절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에 속하였다.
우리나라 대표적 민속화가인 신윤복의 그림을 통해 잘 알려진 단오(端午)는 일명 수릿날(戌衣日·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중오절(重午節), 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첫번째를 뜻하고, \''오(午)\''는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를 뜻한다. 중오(重五)는 오(五)의 수가 겹치는 5월 5일을 뜻하는 것으로 양기가 왕성한 날로 풀이된다.

음양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홀수(奇數)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隅數)를 \''음(陰)의 수\''라 하여 \''양의 수\''를 길수(吉數)로 여겼다. 예컨대 전통사회의 절일(節日)로서 설(1월 1일), 삼짇날(3월 3일), 칠석(7월 7일), 중구(9월 9일) 등이 있는데, 이러한 속절은 \''양수(陽數)\''를 \''길수(吉數)\''로 여기는 기수민속(奇數民俗)들이다.
이러한 기수민속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5월조의 기록에 전한다. 그 기록에 의하면 이 날 쑥떡을 해먹는데, 쑥떡의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리\''란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또, 수리란 고(高)·상(上)·신(神) 등을 의미하는 우리의 고어(古語)인데, \''신의 날\'', \''최고의 날\''이란 뜻에서 불리워졌다고도 하며, 일설에 의하면 단오의 유래와 더불어 중국의 초(楚)나라 사람 굴원(屈原)이 수뢰(水瀨)에 빠져 죽었다하여 수릿날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懷王)때에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 자살하였는데, 그 날이 5월 5일이었다. 그 후 해마다 굴원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전통사회에서 농가의 부녀자들은 \''단오장(端午粧)\''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로 만들어 머리에 꽂아 두통과 재액(災厄)을 막고,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더하게 하였다.
창포비녀는 창포뿌리를 깎아 <수복(壽福)>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그 끝에 연지로 붉게 색칠한 비녀를 머리에 꽂아 벽사하였다. 창포잎과 창포뿌리를 삶아 우려낸 물을 창포탕(菖蒲蕩)이라 하며, 쑥을 함께 넣기도 한다. 창포에는 약초 효능이 있어 이것으로 목욕을 하면 병을 막을 수 있다고 하며, 단오에 이 물로 머리를 감으면 사귀(邪鬼)를 쫓을 수 있다는 풍습이 전하고 있다.

창포(蒼蒲)는 천남성목 천남성과 여러해살이 풀로, 향포·왕창포라고도 한다. 뿌리줄기는 굵고 옆으로 뻗으며, 마디가 많은데 밑부분에서 수염뿌리가 난다. 잎은 뿌리에서 모여나기 하며, 꽃은 6∼7월에 엷은 황록색으로 피며, 양성화이고, 꽃줄기의 중앙부에 길이 5㎝ 정도의 육수꽃 차례로 달린다. 6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으며, 꽃밥은 노란색이다. 열매는 장과(漿果)로서 긴 타원형이며, 붉은색이고 9월에 익는다.
연못가나 도랑가에서 자란다. 생약인 창포근(蒼蒲根)은 뿌리줄기를 말린 것이며 한방에서 기침·거담·두통·구토 등의 약재로 쓰이고, 민간에서는 단옷날에 뿌리줄기와 잎을 삶아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는 풍습이 있다. 양방에서는 뿌리줄기를 방향성 건위제로 쓴다. 붓꽃이나 꽃창포와 잎모양은 비슷하나 전연 별종의 식물이다. 한국·일본·중국·동부아시아·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또, 단오날 새벽 상추밭에 가서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받아 분을 개어 얼굴에 바르면 버짐이 피지 않고 피부가 고와진다고 한다. 남자들은 단오날 창포뿌리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이는 벽사의 효험을 기대하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단오날 중에서도 오시(午時 : 오전 11시∼오후 1시)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시각으로 생각하여 전통사회의 농가에서는 약쑥, 익모초, 찔레꽃 등을 따서 말려 두기도 한다. 말려둔 약쑥은 농가에서 홰를 만들어 일을 할 때에 불을 붙여놓고 담뱃불로도 사용하기도 한다.
또, 오시에 뜯은 약쑥을 한 다발로 묶어서 대문 옆에 세워두는 일이 있는데, 이는 재액을 물리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농가에서는 대추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대추나무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는 습속이 있는데, 이를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 한다.
단오는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생각하여 여러가지 풍속과 행사가 행해졌다. 단오의 대표적인 놀이로는 그네뛰기와 씨름을 들 수 있다. 그네뛰기는 단오날 여성들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조선 후기의 화가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보면 한복을 차려 입은 부녀자들이 치마폭을 바람에 날리며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남성들의 놀이로 씨름대회가 있다. 씨름대회에서 이기는 사람에게는 관례로 황소를 상품으로 주는데, 경기방식은 요즘과 같이 토너먼트식이 아니라 도전자들을 모두 이겨 상대자가 없게 되면 우승을 하게 된다. 한편, 지역민들의 일체감을 고취시키는 의례로서 \''단오제\''와 \''단오굿\''을 들 수 있다.
예컨대 강원도 강릉지방의 강릉단오굿, 경남 영산의 문호장굿, 경북 자인의 한장군놀이 등이 있는데, 이러한 의례들은 각종 놀이 및 행사들과 접목되어 지역민의 축제 형식을 띠고 있다. 조선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5월조의 기록에 의하면 \"궁중의 내의원(內醫院) 에서는 옥추단(玉樞丹)과 제호탕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였다\", \"공조(工曹)에서는 단오선(端午扇)을 만들어 왕에게 진상하였다\"는 궁중 풍속이 전한다.
제호탕은 한약재를 꿀에 섞어 달인 약으로 더위가 심한 여름철 건강을 유지하는데 사용하였으며, 옥추단은 일종의 구급약으로 여름철 곽란( 亂)이 났을 때 물에 타서 마신다. 부채는 더위를 식히기 위한 도구로 단오 무렵이면 더위가 찾아오니, 이날 부채를 만들어 왕에게 진상한 것을 \''단오선\''이라고 하였다.
전통사회에서 단오의 세시풍속은 더운 여름철의 건강을 유지하는 지혜와 신체단련을 위한 놀이, 재액을 방지하기 위한 습속, 풍농을 바라는 의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夏至)

하지(夏至)는 망종(芒種)과 소서(小暑) 사이에 있는 음력 5월 중기(中氣)로, 양력으로는 6월 22일경이다. 이 날은 낮의 길이가 1년중 가장 긴 날이 되는데,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이날 가장 짧아지는 반면, 낮 시간은 14시간 35분으로 1년중 가장 길다.
북반구에 있어서 낮이 가장 길며,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일사시간과 일사량도 가장 많은 날이다. 북극지방에서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지구 표면이 받는 열량(熱量)이 가장 많아진다는 것으로, 이 열량이 계속 쌓여 하지(夏至) 이후에 더욱 더워져 삼복(三伏) 시기에 가장 덥게 된다.

남부지방 농촌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이전이면 모두 끝난다. 강원도지역에서는 파삭한 햇감자를 캐어 쪄 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먹는다. 옛날 농촌에서는 흔히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하지가 되면 묵정밭과 산야는 희디흰 개망초 꽃으로 뒤덮힌다.
과거 보온용 비닐 못자리가 나오기 전 남부 이모작 지대에는 하지 \''전삼일·후삼일\''이라 해서 그때가 모내기에 적기였다. 지금은 보온용 못자리 설치로 모내기가 빨라져 하지 때가 되면, 모는 새 뿌리를 내려 활착하게 된다. 늦모내기가 대체로 끝나는 하지부터는 비료주기와 벼 병충해 방제작업에 들어간다.
장마와 가뭄 대비도 해야 하는 만큼 이때는 일년 중 추수와 더불어 가장 바쁜 때이다. 메밀 파종, 누에치기, 감자 캐기, 고추밭매기, 마늘 캐기 및 건조, 보리 수확 및 타작, 보리수매, 그루갈이용 늦콩심기, 모내기, 모낸 논 웃비료 주기, 제초제 살포 등이다. 보리 타작한 농가는 할매단지에 가을추수 후 넣어둔 쌀을 꺼내고 보리를 넣어 잘 모셔둔다.

또, 대마(大麻) 수확이 이루어진다. 대마를 하는 농가는 모내기보다 더 바빠 대마철은 아예 잠을 못 잔다고 한다. 여름에 줄기를 수확하여 찐 다음 껍질을 벗기고 섬유를 빼내 건조시킨다. 또한, 물속에 담가서 발효시켜 섬유를 얻는 방법도 있다.
대마는 쐐기풀목 뽕나무과의 한해살이 풀로 마(麻) 또는 삼이라고 한다. 삼의 섬유는 질기고 탄성이 강하며, 내수성(耐水性)·내구성(耐久性)도 뛰어나 직물·그물·실 등에 널리 이용되어 왔다. 근래에는 화학섬유에 밀려서 수요가 감소되는 경향이 있으나, 통풍성이 뛰어나서 여름옷 등의 수요는 아직도 높다.
4월 초순에 줄뿌림으로 파종하여 7월에 수확한 대마를, 껍질을 벗겨 말려두었다가 손톱으로 훑어내려 가닥을 내고, 삼의 올을 이어 실을 만드는 <삼는>과정을 거쳐 <베날기>와 <베매기>를 한 다음, 베틀에 얹어 베를 짜낸다.
부녀자들이 가정에서 베·모시·명주·무명의 직물을 짜는 모든 과정을 \''길쌈\''이라 하며, 대마 수확 후, 껍질 벗기기·삼째기·삼삶기·베날기·매기·베짜기의 순으로 제직한다. 길쌈을 통하여 만들어진 직물은 농가의 주요한 소득원이 되었고, 화폐의 대용으로 쓰이는 등 자급자족적 의류 충당 뿐만아니라 경제적 유통을 위한 구실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 말까지 행해지던 길쌈은, 개화 및 서양직물의 수입으로 의류소비형태가 바뀌면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안동(安東)·한산(韓山)·금성(金城)·나주(羅州) 등의 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 전통적인 길쌈이 이어지고 있어, 그들의 제작방법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수되고 있다.
길쌈에서 삼을 삼는 과정은, 매우 고되고 지루한 작업이기 때문에 두레삼이라는 협동작업체를 조직하여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편을 갈라 내기를 하면서 길쌈하기도 하였다. 농가에서 길쌈이 차지한 비중이 높았던 만큼, 이에 대한 속신(俗信)·금기(禁忌)·민요 등이 다양하게 전해 내려온다.

또, 대마의 종자는 식용하며, 작은 새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종자에서 30%의 기름을 함유한 황록색의 건성유가 얻어진다. 니스·비누의 원료, 페인트의 용제로 이용한다. 한방에서는 성숙한 종자 속에 들어 있는 인(仁)을 마자인(麻子仁), 중국에서는 화마인(火麻仁)이라고 하는데, 지방유를 35%나 함유하고, 완하·이뇨 작용이 있어 노인이나 허약자의 변비나 복수의 치료에 쓰인다.
삼은 마취성인 테트라히드로카나비놀(THC)이라고 불리는 화학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옛날부터 환각제·마취제로서 쾌락·종교·의료 등에 이용되어 왔다.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줄기의 분비물인 \''차라스\'', 꽃이 핀 암그루의 맨 윗부분을 말린 간자를 담배처럼 피우는데, 이것을 \''해시시\'' 또는 \''마리화나\''라고 한다.
현재, 마리화나나 차라스의 상용자가 범죄 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고, 또한 건강에도 좋지 않아 세계적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재배·소지·음용 등이 규제되고 있다.

이 시기의 농사력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오월조의 농사관련 부분에 잘 나타난다.
문앞에 터를 닦고 타맥장 하오리라
도리깨 마주서서 짓내어 두드리니
잠농을 마를 때에 사나이 힘을 빌어
누에섭도 하려니와 고치나무 장만하소.
오월오일 단오날 물색이 생신하다
외밭에 첫물따니 이슬에 젖었으며
모찌기는 자네하소 논심기는 내가 함세.
들깨모 담배모는 머슴아이 마타내고
가지모 고추모는 아이딸 너 하여라.
맨드람 봉선화는 네 사천 너무마라

벼농사의 경우 모내기가 끝나면 김매기(지역에 따라서는 논매기라 한다)가 뒤따른다. 벼가 패기까지(출수기) 두세번에 걸쳐 김매기가 이어진다. 처음 매는 김을 초벌매기(애벌매기라고도 한다)라 한다. 초벌매기 후 3주쯤 지나면 두벌매기가 이어지고, 잡초가 많은 논이나 알뜰한 농가, 일손이 많은 농가에서는 세벌매기 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 김매기를 하는 논은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 논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모두들 손쉬운 제초제로 김매기를 대신 하게 된다.
노동력의 부족으로 인해 땅에 마구 뿌려댄 제초제는 결국 벼로 옮겨가고, 그 벼는 사람이 먹게 됨에 따라 체내에 축적되고, 마침내는 각종 암이나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 심각한 상황을 유발하고야 만다. 두레 김매기를 통해 이웃간의 도타운 정을 나눌 줄 알았던 우리네 아름다운 전통은 사라지고, 지금은 한 사람이 충분한 일손이 되어 제초제를 뿌려대고 있으니, 인간이 이기로 인해 머지않아 이 땅덩이와 밥상이 몰락할 날이 도래하고야 말 것이다.
지렁이와 구데기, 각종 벌레들이 우글거리던 우리네 옛 땅으로 회복할 날은 과연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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